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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조선 2024.07.19] 尹의 외교는 트럼프를 대비하고 있나?

  • 서대옥
  • 2024-07-26
  • 40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에 대한 암살시도가 오는 11월 미국 대선을 혼돈으로 몰아넣고 있다. 지난 7월 15일(이하 현지시간) 공화당 대선후보로 공식 지명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전당대회를 이틀 앞둔 지난 7월 13일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유세 도중 총격을 받았다. 하지만 총알이 오른쪽 귀를 스치고 지나가며 기적적으로 생환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피격 후 귀에서 피가 줄줄 흐르는 가운데도 성조기 아래서 굳게 주먹을 쥐고 “싸우자(Fight)”라고 외치며 건재를 과시했다.

미국 집권당인 민주당 대선 후보로 유력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인지력 저하 등으로 전방위 사퇴압박을 받는 가운데 터진 이번 사건으로 오는 11월 미국 대선의 균형추는 공화당 쪽으로 좀 더 기울었다는 평가다. 

1942년생인 바이든 대통령과 1946년생인 트럼프 전 대통령의 나이 차는 4살에 불과하다. 하지만 역대 최고령이자 사상 첫 80대 미국 대통령으로 ‘슬리피 조(Sleepy Joe·잠꾸러기 조)’란 별명을 가진 바이든 대통령이 최근 부쩍 노쇠한 모습을 보이는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총격사건으로 강인함을 부각하며 그의 발목을 잡았던 ‘사법리스크’마저 불식시킬 태세다.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은 부통령 후보로 1984년생인 제임스 데이비드(J.D.) 밴스 공화당 상원의원(오하이오주)을 지명하며 바이든의 고령 리스크를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트럼프 복귀 가능성에 尹 정부 고민  

트럼프 전 대통령이 4년 만에 백악관으로 복귀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윤석열 정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2021년 1월 출범한 미국 바이든 행정부와 그 이듬해 5월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찰떡궁합 유대관계를 과시했다. ‘미국 우선주의자’인 트럼프 전 행정부가 지난 문재인 정부 때 “한국은 부자나라”라며 주한미군 철수 등을 시사하며 방위비를 대폭 증액하고, 북한 김정은 정권과 세 차례에 걸친 단독 정상회담을 여는 등 전통적 동맹관계를 흔드는 행보를 서슴지 않았던 데 대한 반작용이었다. 마지막 미·북 정상회담이었던 2019년 6월 판문점 남·북·미 정상회담 때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잠깐 얼굴을 비치기는 했으나, 실제 회담은 트럼프 전 대통령과 김정은 둘 사이에서 진행됐다.

반면 36년간 상원의원을 지낸 ‘외교통’ 바이든 대통령이 2021년 집권한 이듬해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 때 반일(反日)·친중(親中) 일변도 정책기조로 소원해진 ‘동맹 복원’에 최우선 가치를 두어왔다. 

그 결과 윤 대통령은 취임 11일 만인 2022년 5월 20일 한·미 정상회담을 워싱턴이 아닌 서울에서 열었고, 바이든 대통령 역시 도쿄보다 서울을 먼저 찾는 형태로 윤석열 정부에 힘을 실었다. 지난해 8월에는 과거 민주당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역사적인 ‘캠프데이비드협정’(1978)을 체결했던 미국 대통령 별장 캠프데이비드에서 한·미·일 3국 정상이 마주앉으며 사실상 한·미·일 ‘3각(角) 협력’을 복원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백악관 복귀 가능성이 부쩍 높아지면서 기존 바이든 행정부의 ‘동맹중시’ 외교정책이 송두리째 바뀔 수 있다는 위기감이 감지된다. 트럼프 1기 정권(2017~2021)에 비해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이 상당히 정제되고 ‘톤 다운’ 됐다고는 하나, 국제사회 최대 현안인 우크라이나전쟁을 비롯해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와의 관계설정, 미·중 패권경쟁, 해외주둔 미군 방위비 분담 등에 있어 민주당 바이든 행정부와는 완전히 결이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24시간 내 우크라戰 종전”

일례로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은 우크라이나전쟁 조기종전을 시사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4월 트럼프 캠프 측이 크름(크림)반도와 돈바스를 러시아에 할양하는 조건으로 전쟁을 조기종료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2014년 러시아가 강제병합한 크름반도를 비롯해 친러 성향 반군들이 점령한 돈바스는 우크라이나 전체 영토의 20% 정도를 차지한다. 우크라이나로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굴욕적 조건이다.

앞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유세 과정에서 “내가 대통령이 된다면 젤렌스키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을 모두 만나 24시간 안에 전쟁을 끝내겠다”고 호언장담한 바 있다. 주러 대사관 공사를 지낸 박종수 전 북방경제협력위원장(장관급)은 “조기종전은 러시아의 승리를 의미하고 미국의 대(對)우크라이나 영향력은 급속히 감소할 것”이라며 “트럼프 집권 때인 2019년 미군이 시리아에서 철수한 것과 유사한 상황이 연출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의 이 같은 입장은 바이든 대통령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워싱턴에서 열린 나토 결성 75주년 기념식에 초청하고, 별도 정상회담까지 해가며 굳건한 지원을 다짐한 것과 현격한 차이다. 물론 이 자리에서도 바이든 대통령은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향해 “신사 숙녀 여러분, 푸틴 대통령”이라고 소개해 동맹국 정상들과 지지자들을 일순 경악에 빠뜨렸다. 앞서 지난 6월 27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CNN스튜디오에서 열린 대선후보 TV토론에 이어 거듭 인지력 저하 논란을 증폭시킨 셈이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의 재집권 기반이 흔들리는 와중에도 한국 정부는 여전히 바이든 행정부와 밀착행보를 보이고 있다. 외교가에서 ‘트럼프 시대를 대비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지난 7월 11일 윤 대통령이 직접 참석한 나토정상회의는 이 같은 우려를 증폭시킨 무대였다. 이날 나토 창설 75주년을 기념하는 나토정상회의에 한국은 비록 32개 회원국은 아니지만, 일본·호주·뉴질랜드 등 ‘인도·태평양 4개국(IP4)’의 일원으로 참석했다. 나토 가입을 추진하다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화(禍)를 부른 우크라이나는 사실상의 ‘준(準)회원국’ 자격으로 참석했다.

나토정상회의에 앞서 백악관에서 열린 리셉션에서 윤 대통령 부부는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부부와 함께 백악관 2층 발코니 정중앙에 서기도 했다. 미국 대통령의 독수리 휘장이 붙어있는 백악관 2층 발코니 정중앙은 전 세계 모든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곳. 이 같은 자리에 러시아와 2년 넘게 전쟁 중인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부부가 섰고, 그 바로 옆에 윤 대통령 부부가 선 것이다. 이 장면을 본 한 전직 외교관은 “사진 찍기 가장 좋은 자리를 내어줄 테니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제공하라는 뜻으로밖에는 해석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백악관 발코니에 함께 선 韓·우크라  

물론 평시라면 미국 대통령 부부나 설 수 있는 백악관 2층 발코니 정중앙에 서는 것은 대단한 외교적 성과다. 하지만 이날 윤 대통령은 나토 가입건으로 러시아와 전쟁을 치르는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사실상 공동운명체로 묶여버린 모습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가 재집권하고 미국이 우크라이나에서 일방적으로 발을 빼면 바이든 행정부의 요구에 따라 우크라이나에 포탄까지 우회지원했던 한국만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 미국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 행정부는 베트남전쟁 와중인 1973년 ‘파리평화협정’을 체결하면서 일방적으로 베트남에서 발을 뺀 전력이 있다. 결국 ‘파리평화협정’ 체결 2년 뒤인 1975년 남베트남은 함락됐다.

자연히 외교가에서는 “24시간 내 전쟁 종료”를 공언한 트럼프 재집권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한국이 지나치게 깊게 우크라이나전쟁의 수렁에 발을 담근다며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주러대사를 지낸 위성락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만약 트럼프가 당선돼 우크라이나전 조기종전을 추진한다면 미국과 러시아 관계는 호전될 것이고, 한국은 사상 최악의 한·러 관계를 수습해야 할 과제를 떠안게 될 것”이라며 “트럼프가 북한 김정은하고도 직거래를 하려고 할 가능성이 높은데, 결과적으로 미·북은 열리고 일·북은 지금도 접촉하는 와중에 우리만 소외된다. 우리가 가진 선택지가 많지 않다”고 염려했다.

이 같은 우려에 대해 주러대사와 외교부 1차관을 지낸 장호진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7월 13일 한 언론에 출연해  “아무리 가까운 동맹국이지만 남의 나라 선거 결과를 예단해서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면서도 “미국 민주당이나 공화당 양측 의원이나 인사가 굉장히 많이 방한하고 저희와 만나는 만큼 한·미 동맹에 대해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탄탄한 지지가 있다”고 선을 긋고 나섰다.

물론 윤석열 대통령의 외교 행보가 전혀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6월 19일 평양을 전격 국빈방문해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과 만나 ‘유사시 지체 없는 군사적 지원’이란 문구가 포함된 북한과의 군사동맹을 사실상 부활시켰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국군 최고통수권자로서 무대응으로 일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에 푸틴이 가장 불편해하는 나토정상회의에 참석해 푸틴이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뜨거운 악수를 나눈 것으로 볼 수 있다. 한 전직 외교관은 “헤어진 연인(푸틴) 바로 앞에서 새 연인(젤렌스키)과 손을 잡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트럼프 부상에 양다리 걸친 각국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의 위상이 흔들리고, ‘나토 탈퇴’를 시사했던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평가도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2월 “돈(방위비)을 내지 않으면 러시아가 나토 회원국을 공격하도록 독려하겠다”는 메가톤급 발언으로 전 세계에 충격파를 던졌다. 이후 트럼프 전 대통령은 “내가 하는 것은 일종의 협상”이라며 “유럽 회원국이 공정한 몫을 내면 나토에 잔류하겠다”고 말하며 발언 파장을 축소하려 했다.

하지만 유럽의 나토 회원국들은 트럼프 재집권 시 미국이 나토를 일방적으로 탈퇴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여전하다. 특히 한국과 함께 나토정상회의에 참석한 나머지 IP4 정상들도 우크라이나 문제에 한국만큼 무게를 싣지는 않았다. 

부부 동반으로 참석한 윤 대통령과 달리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크리스토퍼 럭슨 뉴질랜드 총리는 단독으로 참석했다. 이들은 백악관 발코니 가운데는 윤 대통령 부부와 젤렌스키 대통령 부부에게 내어주고 기둥 옆으로 비켜 섰다. IP4의 일원인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는 나토 정상회의에 불참하고, 리처드 말스 부총리 겸 국방장관을 대타로 보냈다. 호주는 미국과 군사정보를 공유하는 ‘쿼드(QUAD, 미국·일본·인도·호주)’ ‘오커스(AUKUS, 호주·영국·미국)’ ‘파이브아이즈(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에 모두 속해 있는데, 정작 호주 총리는 나토정상회의에 불참한 것.

심지어 나토 회원국이지만 노골적인 ‘친러’ 성향을 드러낸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는 나토정상회의 폐막 직후 트럼프의 별장인 미국 플로리다의 마라라고리조트로 날아가 트럼프와 별도 회동을 갖기도 했다. 이후 EU 순회의장국인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11월 대선에서 승리하면 즉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평화협상을 요구할 것이며,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워놓았다”는 서한을 EU 각국 정상들에게 발송한 것으로 알려진다.

앞서 일본은 트럼프의 재집권 가능성이 높아진 지난 4월 아소 다로(麻生太郞) 자민당 부총재(전 총리)가 미국 뉴욕의 트럼프타워를 찾아 트럼프 전 대통령과 회동을 하는 등 특유의 양다리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외교부 차관을 지낸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일본은 과거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오랜 대미 로비 경험이 있고 집권 자민당에 여러 파벌들이 있어서 역할분담이 가능하다”며 “미국의 정치권 변동에 자국의 외교적 이익이 덜 영향이 가도록 한다”고 지적했다.

 

천안문 성루에 선 박근혜 연상?

이에 윤 대통령 부부의 백악관 발코니행이 2015년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베이징 천안문(天安門) 성루에 섰던 것과 유사한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5년 9월 3일 중국이 이른바 ‘2차 세계대전’ 승전기념일로 기념하는 전승절 열병식에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 푸틴 러시아 대통령, 최룡해 북한 조선노동당 비서(현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과 함께 천안문 성루에 올라 미국 등 동맹국들로부터 동맹의 진정성을 의심받았다. 

반면 이번에는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부부와 함께 백악관 발코니까지 올라서면서 중국, 러시아 등 미국의 반대진영으로부터 과도한 경계심을 사는 것 아니냐는 정반대의 우려다.

김흥규 아주대 정외과 교수(미중정책연구소 소장)는 “윤석열 정부는 그간 바이든 행정부의 입장에 맞춰서 세계를 이분법적으로 바라보는 가치외교를 추진했는데 트럼프 시기가 되면 지정학적 관점, 거래적 관점에서 동맹을 바라볼 것이라 한국으로서는 매우 부담스러운 압력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아울러 트럼프가 러시아와 관계를 개선하고 중국 압박에 집중하면서 한·미 동맹을 대북 동맹이 아닌 대중 동맹으로 전환할 것을 훨씬 강하게 주장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물론 트럼프가 한 차례 미국 대통령이 지니는 무게를 경험해 본 만큼 좌충우돌한 집권 1기 때와 다를 것이란 주장도 있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선거 전에 나오는 이야기들과 선거 후 동맹정책에 반영되는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을 것”이라며 “트럼프표 정책과 공화당의 정책을 잘 구분해서 접근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주영대사와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지낸 김건 국민의힘 의원은 “트럼프가 당선되면 당연히 한·미 관계에도 영향이 있을 것이고 자연스러운 한·미 간의 정책조정 과정을 거칠 것”이라며 “지난 한·미 동맹의 70년 역사를 보면 그런 과정을 너무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가 기질’에 맞춰 더 태연자약할 필요도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트럼프 복귀에 대비한 ‘플랜B’ 마련은 분명히 필요해 보인다. 박종수 전 북방경제협력위원장은 “대외정책을 비즈니스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트럼프의 스타일에 비추어 미군 주둔비 부담을 한국에 요구하는 상황이 예견된다”며 “한국은 단기적으로 민간·공공·의원외교 등을 통해 러시아와의 관계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외교부 차관을 지낸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트럼프 당선 시 방위비 분담비용 등이 가중되겠지만 중국을 견제한다는 측면에서 한국은 일본과 함께 중요한 축”이라며 “다만 주한미군의 역할이나 구성, 병력 등이 감축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하고 아울러 잠재적 핵능력도 함께 추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